"내 코트 아래에는 지친 심장이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따뜻한 심장이 있노라."
이 글은 20세기 미국에서 악명 높았던 살인범 '쌍권총 크라울리'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체포된 후 남긴 쪽지의 일부이다.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서문은 바로 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 카포네와 같은 희대의 범죄자조차 스스로를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대중에게 이익을 베푸는 사람이라 여겼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책이 수십 년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전제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진짜 '악'은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모두가 각자의 세상에서는 스스로가 선하고 합리적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인가? 악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공격하고,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다. TV 뉴스에 나오는 북한이 나의 주적(主敵)이 아니다. 내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직장 동료, 내 자존심을 긁는 친구, 내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이 훨씬 더 현실적인 '악의 존재'이자 '주적'이 될 수 있다.
나의 선함을 기준으로 세상의 악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강할수록 세상은 적으로 가득 찬다
여기에 흥미로운 심리적 역학이 존재한다. 바로 '선함의 차등'이다.
내가 선하다고 믿는 마음, 즉 '자기애(自己愛)'가 강하면 강할수록 나의 선함은 더 확고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절대적인 선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거나 어긋나는 타인의 행동은 더 크고 명확한 악으로 규정된다.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을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이다'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올바르고 선한 나'의 주변에 유독 '나쁜 사람들(악의 세력)'이 많을 뿐이다. 억울하고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자기애가 강해 자신의 선함을 절대시할수록, 주변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일이 잦아진다. 자연스럽게 적이 많아지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는 이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이기적일까?", "성격이 정말 나쁘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이렇게 평가하고, 심지어 바꾸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스스로를 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의 비난과 지적은 상대방에게 '선한 나에 대한 부당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것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를 그의 세상 속 '악당'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뿐이다.
이 간단한 심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누군가의 행동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를 '성격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극할 필요가 없다. 그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를 바꾸려 들거나 논쟁에서 이기려 애쓰는 대신, 그저 '아, 저 사람은 자신을 저렇게 선하다고 믿는구나'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모든 사람은 '선한 나'라는 자기만의 성(城) 안에서 살아간다. 그 성벽을 굳이 공격해서 싸움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평화로운 관계의 시작은 상대를 바꾸려는 노력을 멈추고, 각자의 '선함'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