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즉,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하지만 성찰의 시간을 거치면,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할 때, 사람은 깊은 깨달음을 얻은 ‘성숙한 인간’이 된다.
통일교는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자기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옳다’, ‘우리의 길이 유일하다’는 확신 속에 살면서. 그런데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은 그런 생각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성장의 문턱에 서게 된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다. 그 고통의 깊이만큼,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세상의 시선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평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전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 우리가 기독교인을 전도하자면서도, 정작 그들을 낮게 보거나 적대시했다.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들을 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원리강론』은 성경을 근간으로 한 매우 기독교적인 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현대의 감각’으로, ‘그들의 언어’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아직 어린아이는 세상을 자기 눈으로만 본다. 우리도 오랫동안 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그때 통일교는 한층 더 성숙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종교로 거듭날 것이다.
|